영어 中國語 日本語

전체메뉴

맨위로 맨위로 버튼

기념관소식

  • home
  • 소식
  • 기념관소식
[3·1운동 100주년 및 광복 74주년 특별기획전] 기미년 이후 백년
작성자 : 전시부 작성일 : 2019-08-08 조회수 : 6,290

[3·1운동 100주년 및 광복 74주년 특별기획전] 기미년 이후 백년


- 우리는 3·1운동을 어떻게 기억했을까

독립기념관은 3·1운동 및 광복절 74주년을 맞이하여 3·1운동에 대한 지난 100년 간의 기억 작업을 살펴보는 특별기획전시를 개최합니다.


1919년 3월 1일 일제에 항거하여 전 민족의 독립 의지와 열망을 보여준 3·1운동은 독립운동사뿐 아니라 한국사의 한 획을 가르는 중대한 사건입니다. 각계 각층 남녀노소가 ‘독립’이라는 대의 하에 거리로 나와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던 이 민족 공통의 기억은 독립운동의 정신적 원동력이자 대한민국의 정신적 뿌리로 여전히 우리의 삶과 함께 합니다.


‘3·1운동’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한국 근현대사 100년을 되새기며 앞으로 3·1운동을 어떻게 기억해나갈지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 전시개요


- 기 간 : 2019. 8. 14.(수) ~ 2019. 11. 24(일)

- 장 소 : 특별기획전시실 Ⅱ(7관 내)

- 내 용 : ‘3·1운동’이라는 키워드로 본 한국근현대사 100년 (대한독립만세 태극기 등 전시유물 78점)


■ 전시자료

< 배준철 일기장, 1935 >

배준철(1919~1997)은 윤봉길 의거 당시 김구의 심부름으로 안창호에게 피신하라는 전갈을 전하러 간 인물이다. 당시 상하이 한인사회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기록을 일기로 남긴 그는 1935년 3월 1일자 일기에서 “한국의 아들과 딸 된 자는 누구를 물론하고 이 날을 거룩하게 하라.”며 3·1절의 감상을 적고 있다.


< 미국에서 사용한 대한독립만세 태극기, 일제강점기 (등록문화제 제387호) >

가늘고 긴 삼각형 형태의 모직펠트 깃발 안에 ‘대한독립만세大韓獨立萬歲’라는 글자와 태극기가 박음질되어 있다. 미국 대학 깃발과 유사한 모양, 재질로 미루어 광복 이전에 미국에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 독립운동가 이강훈의 3·1절 기념사 원고(1993)와 만년필 >

이강훈(1903~2003)은 3·1운동 이후 중국으로 망명, 1933년 상하이에서 주중 일본공사를 처단하려는 의거를 거행하려다 체포되어 15년형을 언도받았다. 이강훈이 91세에 적었던 3·1절 기념사 원고와 그가 사용했던 만년필이다.

공공누리의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표시제도에 따라 누구나 이용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