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상의 발해사 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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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3-01-12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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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결 론
발해의 건국 이후 亞靺鞨人을 토대로 하여 고구려유민과…(To be continued )
,인문사회,레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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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런 면에서 고구려 변방인으로부터 출발한 발해인은 고구려문화의 기반 위에서 그 계승성과 정통성을 표방하면서 국가를 운영하였던 것이다.
설명
후대에 金이 강성해지면서 생여진과 숙여진의 통합을 표방할 때 발해에 대하여는 “女眞渤海本同一家”라고 하여, 종족적 유대감을 표방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사실을 토대로 후대의 여진족의 근간이 되는 물길계 말갈이나 고구려계 유민과도 구별되는 상호간에 융합되어진 별도의 종족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 , 한국사상의 발해사 위상인문사회레포트 ,
후대에 金이 강성해지면서 생여진과 숙여진의 통합을 표방할 때 발해에 관련되어는 “女眞渤海本同一家”라고 하여, 종족적 유대감을 표방하기도 하였다. ...
한국사상의 발해사 위상






레포트/인문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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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대에 金이 강성해지면서 생여진과 숙여진의 통합을 표방할 때 발해에 대해서는 “女眞渤海本同一家”라고 하여, 종족적 유대감을 표방하기도 하였다. 발해의 존속시에 아직 여진인은 독립적인 하나의 국가체를 형성할 수 있을 만큼 발전을 이루지 못하였고, 종족적 정체성이 확립된 것도 아니었다. 발해사를 한국사의 입장에서 고구려사와의 연관성을 위주하여 한국사 체계내로 설정한다면, 金의 태조가 여진과 발해는 一家라 하여 발해인들에 대한 동족의식을 강조한 것은 발해사의 여진민족사 내지 말갈사로 귀결되는 근거가 될 수도 있따
한편 여진인이 발해인에 대하여 종족적 동질성을 강조한 것은 발해인과 고구려인의 유대감과도 비교될 수 있따 이 양자의 사이에서 발해인은 고구려의 정통 후손도 아니고 그렇다고 후대 여진인의 직접적인 선조도 아닌 발해 나름의 종족을 이루고 국가를 형성하였던 것이다.